인간, 어떤 존재인가?

황당한 질문 같지만 경우에 따라선 답이 있다. 우선 인간은 자기 주위에 존재하는 빛 중 90% 이상을 보지 못하는 딱한 존재이다. 대자연 속에는 가시광선 이외에도 많은 빛이 존재한다. 1895년 뢴트겐은 실험 도중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빛이 사진 필름을 감광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이 오늘의 X선인데, 자연 속에는 X선 이외에도 많은 빛들이 존재 하고 있다.

TV, 라디오, 휴대전화기가 수신하는 전자파, 음식을 익혀 주는 마이크로 웨이브 등이 모두 빛이다. 빛을 진동수에 따라 분류하면 가시광선이 점유하는 영역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물리학의 주장에 의하면 우주 속에 존재하는 물질의 90% 이상은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한다.

인간의 귀는 어떠한가?

소리는 그 본질이 공기의 진동인데 인간의 귀는 1초당 20∼2만 번 진동하는 음파만 들을 수 있다. 가청영역을 벗어나는 음파를 초음파라 부른다. 개는 3만8천, 박쥐는 9만8천, 돌고래는 20만의 진동수를 가지는 초음파를 듣는다. 현대의학에서는 진동수 1백만∼1천만 사이의 초음파를 사용하여 인체 내부를 촬영하고 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사의 90% 이상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자연세계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인간사회에도 있다. 동산이나 부동산, 화폐나 금은보화 같은 유형자산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삶의 가치 중 극히 일부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된다. 개인, 기업, 국가에 힘이 될 수 있는 자산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많다. 이런 것을 무형자산(intangible assets)이라고 부른다. 자기 집 거실에서 창업한지 15년 3개월만에 GE, MS 등을 제치고 2000년 3월 24일 시가총액 기준 세계 제1의 기업이 된 시스코(Cisco)의 창업자인 샌드라 러너는 "가족처럼 서로 믿으며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문화"가 시스코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런 조직문화 이외에도 무형자산의 예는 많다. 어느 기업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사랑, 존경, 신뢰, 선망 등도 무형자산에 속한다. 무형자산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그 축적방법이 특이하다.

무형자산 중 최근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 브랜드(brand)이므로 이것을 예로 들어 축적방법을 살펴보자. 1956년 소니(SONY)사가 개발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지고 당시의 모리타 사장이 뉴욕에서 라디오 판매상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판매상은 "이 상품을 우리 판매망을 통해 대량으로 팔려면 브랜드를 우리 것으로 바꾸어 붙여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적극적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모리타는 브랜드 조건 때문에 상담을 중지하고 동경에 있는 본사와 상의했다. "브랜드 문제는 회사가 좀 성장한 후로 미루고, 지금 당장은 자금사정이 어려우니 큰 주문을 놓치지 말아주시오" 하는 것이 본사의 요청이었다. 그러나 심사숙고 끝에 모리타는 소니 상표를 붙일 수 있는 소량주문에만 응했다. 이와 같은 노력이 30여 년 쌓이면서 소니의 브랜드는 세계정상에 올랐고, 모리타는 소니를 은퇴하게 되었다. 은퇴 회견에서 "당신이 소니를 위해 내린 의사결정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것을 하나 들라면 무엇을 꼽겠소?"라는 질문에 모리타는 (단기적 매출을 희생하고, 장기적 목표를 지향한) 1956년의 브랜드 고수를 들었다.

필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최고경영자들을 만날 기회에 이 주제를 놓고,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소?' 질문한 적이 있다. 대부분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실속부터 챙겨야 한다'고 답하여, 한국 경영자들의 단기실적 지향을 보였다. 만약 소니가 단기 매출증대를 선택하여 장기 목표인 상표를 포기했다면 소니의 브랜드가 오늘처럼 세계 정상에 오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에 와서 한국 상품의 브랜드 힘(力)이 약하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이 기회에 우리는 브랜드만이 무형자산은 아니라는 것,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에너지 역할을 하는 무형자산의 중요성, 그리고 무형자산의 축적은 소니의 경우처럼 장기 최적 (long-term optimum)을 지향(志向)하는 투철한 가치관, 그것을 위해 단기 최적을 포기하는 희생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울대 경영대 교수/ yoonsc@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