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벤처정신]찰스 다윈…생존 위한 特化전략 강조한 ‘벤처인의 기원’

벤처시장은 ‘적자생존’지배하는 정글…‘생태계 변화에 발빠른 적응’메시지 귀담아들어야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공룡은 이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카멜레온은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 왜 그럴까. 카멜레온의 생존 비법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크고 강한 것이 작고 약한 것을 압도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작고 약한 카멜레온이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작고 약해 보이던 벤처가 어느새 공룡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불과 1천달러로 사업을 시작했던 델 컴퓨터社. 이 작은 기업이 10년만에 1백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창고에서 시작한 휴렛패커드社는 이제 대기업 반열에 올랐고, 대학을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社를 창업한 빌 게이츠는 세계 제1의 부호가 됐다. 생태계의 환경 변화에 발빠른 적응력을 보였던 카멜레온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정글 같은 자연계와 벤처계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대기업을 압도할 만한 벤처의 대표 모델이 없다. 왜 그럴까. 혜성 같이 나타난 벤처들이 초반에는 반짝 빛나다가 그 영광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초를 자랑하며 시장에 ‘좌판’을 펼쳤지만,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공룡에게 카멜레온은 어느새 짓눌려 버린다. 왜 벤처의 선발자 이익(first movers advantage)이 한국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것일까.

좌판을 처음 펼쳤을 때는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나자, 대형 백화점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노점의 좌판을 툭 쳐버린다. 그러자 좌판은 힘없이 쓰러져버렸다. 인터넷 벤처 쇼핑몰이 그랬고, 포털 사이트 업체들도 수익모델에 목말라 하면서 시들거리고 있다. 펀딩한 자금이 바닥이 날 때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벤처들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자연계에서 새로운 종의 95%는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생존에 실패하고 사라진다. 한국의 ‘벤처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면 적자생존의 법칙이 판을 치는 정글 같은 시장의 논리 속에 벤처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진리’를 쫓았던 벤처들, 몸집 크고 힘 센 공룡들도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자 자신들이 개척해 놓았던 땅을 잃어가고 있다.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는 카멜레온뿐 아니라 공룡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적자생존의 이론을 발견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1809∼1882). 그는 30년의 탐사 항해 끝에 ‘종의 기원’이란 책을 한 권 펴냈다. 1859년에서야 세상의 빛을 본, 지금으로부터 1백42년 전의 이 책에 지금 수렁에 빠진 벤처기업들을 건져줄 지혜가 담겨 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벤처기업의 대응전략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다. ‘자연도태 혹은 생존을 위해 우성의 형질을 보존하고자 하는 성질’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다윈의 주장은 환경에 적응하는 우성(優性)의 형질을 보존해야 ‘종의 기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생태학적 여건에 적응하기 위한 남과 다른 특화 전략이 있어야 종의 생존이 가능하며,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성 형질 보존’의 전략

생태학적 여건에 맞도록 적응하면서 생존을 위한 우성 형질을 보존하고 있는 딱따구리를 살펴보자. 딱따구리는 다른 새와 마찬가지의 모습이다. 하지만 생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단단한 부리, 긴 혀, 빳빳한 꼬리깃털, 갈고리 모양의 비늘이 있는 발은 보통 새와 사뭇 다르다.

튼튼하고 강한 부리는 나무 껍질에 구멍을 낼 수 있게 돼 있다. 유난히 긴 혀는 구멍 속에 있는 곤충을 먹기 쉽도록 발달돼 있다. 빳빳한 꼬리 깃털은 그 자세를 단단히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일반적인 보통 새는 뒤로 구부러진 발톱을 한 개만 갖고 있는데 반해 딱따구리는 두 개의 발톱을 갖고 있다. 나무껍질 위에 발을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서다.

다윈의 설명에 따르면 딱따구리는 생태 환경에 맞도록 자신만의 특화된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특화 전략이 없다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새롭고 변화된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신비로운 유기체의 능력은 자금유통 능력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이다.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론을 발견한 찰스 다윈은 생물의 적응력이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이때 적응력은 생존을 위한 우성 형질의 보존에 있다. 딱따구리가 자연도태 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우성 형질은 가장 기본적인 데 있다.

강한 부리로 나무껍질 아래 숨어 있는 곤충을 잡아먹고, 구멍을 파서 나무 안으로 들어가 있는 곤충을 긴 혀로 잡아먹는다. 그리고 나무에 안전하게 붙어있기 위해 빳빳한 꼬리 깃털과 두 개의 뒷발톱을 지니고 있다. 나무 속에 있는 벌레나 곤충을 잡아먹고 살기 위해 딱따구리는 남다른 우성 형질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딱따구리는 1초에 15회의 속도로 나무를 쪼아댄다. 이 때 머리를 움직이는 속도는 총알의 2배나 된다. 그래서 딱따구리의 머리에는 뇌 사이에 스펀지 조직으로 된 충격흡수 장치가 있다. 그리고 특수한 근육이 있어 부리로 나무를 쪼는 순간 뇌를 반대방향으로 당겨 충격을 덜 받도록 섬세하게 설계돼 있다.

하지만 아무리 충격을 줄이는 기술이 있다 해도 부리로 쪼는 순간 머리의 방향이 틀어져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그래서 딱따구리는 항상 머리를 쪼는 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각을 이루도록 목의 근육 조직 또한 특별하다.

특화된 벤처 전략 없으면 자연도태

벤처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딱따구리 같은 특화된 비즈니스 전략이다. 딱따구리는 강한 근육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무에 쉽게 달라붙어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꼬리에 난 빳빳한 깃털은 체중을 나무에 실어 받쳐주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뚫어 속에 있는 벌레나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것은 벤처가 시장에서 이윤을 창출하며 기업이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

지금 벤처기업들은 딱따구리 같은 우성 형질의 생존 전략을 갖고 있는가. 딱따구리를 나무에 지탱시키는 시장 전략이 벤처기업들에게 있는가. 단단한 부리로 먹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같은 생태적 특성을 벤처기업들은 갖고 있는가. 끈끈이 같은 긴 혀를 뻗어 곤충을 핥아먹는 핵심 역량을 벤처들은 지니고 있는가. 환경에 적응하는 자신만의 특화된 벤처 전략이 없다면 시장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자연도태의 진화론적 법칙이다.

적응이란 생존과 사멸의 갈림길에서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다. 벤처도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는 조직은 소멸되고 만다. 그러나 혼란스런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번성하는 조직이 있다면, 그들은 기존의 것을 개량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촉진시키고, 새로운 방법을 개척한다.
따라서 그들은 살아 남는다. 벤처가 살아남는 지혜는 다윈의 딱따구리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석철진(경희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