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웰치와 GE 방식 필드북

1980년대 후반 잭 웰치는 GE를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 수준의 구조조정을 했다고 만족해하며 관심을 직원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직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러한 전략의 효과 중 하나는 직원들을 창의적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89년에 그는 워크아웃이라는 전사적 혁신 방법을 통해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현장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에게 GE의 일상적 운영에 대하여 제안할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였다.

연매출 1,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의 기업 GE. 웰치는 20년간 어떻게 이 회사를 현대 경영의 신화로 성장시켰을까.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인재 발굴과 사람 키우기에 쏟았다. 실제로 그는 자기가 쓸 수 있는 시간의 70%를 사람에게 쓰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경영의 출발점과 종착지가 곧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조직 구성원들의 장점을 살리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심리적 뇌관'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GE가 자랑하는 6시그마 전략이나 탁월한 서비스정신 역시 여기에서 나왔다. 그는 "경영자의 역할은 한손에 물뿌리개를 들고 다른 한손엔 비료주머니를 들고 꽃을 가꾸는 사람과 같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리더십이 예술이라면 웰치는 훌륭한 예술가로서 입지를 굳혔다"(비즈니스위크)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사업 구조조정이라는 경영용어가 통용되지도 않았던 80년대 초에 이미 획기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세계시장에서 1∼2위의 경쟁력을 가진 사업부문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잘라냈다. 회장 취임 초기에 170여개나 됐던 사업 중 110개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 산업군, 첨단 산업군, 서비스 산업군의 세 부문으로 재편했다.

GE의 개혁은 하드웨어에서 시작해 점차 소프트웨어의 개혁으로 진행됐다. 당시의 개혁은 우리가 IMF관리체제를 겪으면서 추진한 구조조정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것으로 기업의 근본을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구조조정은 사내외의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그가 전통적인 미국의 국민 기업을 파괴하고 있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톰 피터스처럼 미래를 예견했던 학자들은 잭 웰치의 획기적인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을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업 구축을 위한 창조적 파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미친 짓'이라고 지탄받던 웰치의 방식이 미래 기업의 생존전략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GE를 강하게 만든 것은 새로운 기업문화의 구축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벽과 관료주의에 갇혀 있던 회사의 기업문화를 마치 구조조정하듯 혁신하는데 주력했다. 모든 구성원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고 비관료적인 두뇌집단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최고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아이디어를 수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쯤 되면 전직원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품질 향상에 전념하고 비용 절감과 스피드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그는 가장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에 따른 보상과 책임·의무까지 확실히 챙겼다.

이를 통해 웰치는 리더십의 핵심 요소를 '4Ｅ'로 체계화했다. 에너지(Energy), 활력(Energizer), 결단력(Edge), 실행력(Execution)이 그것이다.

그가 해마다 주주, 직원, 고객에게 보내는 편지는 전세계의 재무분석가와 언론, 기업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건 중의 하나다. 지난해 편지에서도 그는 회사의 실적과 비전 제시에 이어 세가지 전사적 기업 운동인 세계화, 서비스, 6시그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책에는 웰치의 경영정신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매뉴얼도 함께 들어 있다. 'ＧＥ방식'과 '전략 요약', '자기평가 실습 예제', '행동 단계', 'ＧＥ도구 모음' 등이 활용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우선 리더십 모듈부터 보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한다.
회의 횟수와 시간을 줄여라.
지시를 줄이고 부하직원의 의사결정 권한을 키워줘라.
일상적인 문제의 승인절차를 간소화하라.
새로운 아이디어로 주변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밝게 행동하라.

그는 이 장에서 '인재가 최고 자산'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훌륭한 인재를 고용한 뒤에는 인적자원 관리를 멈추지 말라.

뛰어난 직원을 보유하는데 필요한 제도를 마련하라. 유능한 직원에게는 일회에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보상하라. 인력관리팀 임원들과 많이 토론하고 정기적으로 유능한 인재에 관해 보고하도록 하라. 성과를 근거로 승진시켜라.

그러면 조직 모듈과 조직 활력화 모듈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는 "모든 직원의 두뇌를 활용하라"고 역설한다. 또 "부끄러워하지 말고 훔쳐라"라고 요구한다. 그가 지난해 1월에 강조한 얘기를 보자. "우리는 좀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려는 열정을 갖고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사람을 원한다. 사무실 동료들과 다른 기업으로부터 더 나은 업무처리 방법을 모색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계속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

GE의 두가지 특징은 '벽 없는 조직'과 '학습하는 문화'다.

그 중에서도 벽 허물기에 관한 평가서를 한번 들춰보자. '수직적 벽'을 점검하는 요소 중 스피드와 유연성 문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결정은 현장에서 업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리며 1주일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처리되는가? 모든 계층의 관리자들은 일선의 책임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전략적 책무도 맡는가?

이를 통해 고위층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지, 전사원들과 폭넓게 공유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결과에 대한 보상도 직책을 기준으로 하는지, 기술 및 업무성취도를 기준으로 하는지 평가할 수 있다.

혁신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엄청난 간접비나 복잡한 결재 절차 없이 심사되고 결정되는가?

이는 곧 학습문화와 직결된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조직 내부와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지 모르는 동종 업계 동료들과 교제하기 위해 외부 이벤트에 자주 참여하라.

가장 가까운 협력 업체 중 10곳에 전화해 그들 기업이 최근 실행했던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물어보라.

매주 한 두 시간 경쟁자의 웹사이트를 검색해서 배울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 핵심적인 경영 아이디어를 집중 보도하는 잡지의 특집 기사를 읽어라.

새로 나오는 경영서적, 특히 혁신적인 최첨단 테크놀로지에 관한 서적들을 뒤떨어지지 말고 읽어라.

이렇게 아이디어를 활용하다 보면 소비자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된다.

이 책에는 고객 모듈에 관한 지침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이를 6시그마 프로그램으로 설명한다. 키 포인트는 고객감동이다.

고객에게 접근하는 지름길은 무엇인가.

맨 먼저 고객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능력도 고객 기준으로 분석하라.
아웃풋의 측정치에서 편차를 이해하라.
고객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부 프로세스 열쇠를 찾아라.

이 같은 사고에서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나면 다음 단계에서 새로운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GE의 실천사례처럼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고객들을 먼저 고려하라.
프로젝트에 대한 초기 토론에 고객을 참여시켜라.
고객이 좋아할 것이라고 미리 가정하고 진행하지 말라.
고객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라.
프로젝트를 위해 회사의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데만 급급하지 말라.

이 책의 2부에서는 현장에서의 잭 웰치 강의와 연설, 주주와 고객에게 보낸 편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속에서 경영전략가로서 그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그의 육성을 통해 드러난 기업경영 전략과 위기관리 기법은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초기 경영전략 중 하나는 시장에서 1등 아니면 2등이 되는 것이었다. 일단 업계 최고의 체질을 확실하게 단련시킨 다음에는 덩치 줄이기에 나섰다. 처음 회장이 됐을 때 40만4,000명이던 직원을 7년 만에 30만명으로 줄인 것이다.

당시에는 어떤 리더도 위기에 직면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 총액을 삭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다운사이징은 도산 직전의 마지막 돌파구였고 종업원 해고는 실패의 부끄러운 징표였다. 미국의 윤리는 근로자를 신성하게 취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웰치는 그러한 통념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다운사이징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잘못하면 회사 전체가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비난이 쏟아졌다. 건물을 남겨두고 사람만 죽이는 살상무기인 중성자탄에 비유해 그를 '중성자탄 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수많은 비난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같은 노력 끝에 그가 체득한 섭리는 곧바로 현대 경영학의 요체가 됐다.

'대기업의 단점은 규모를 활용하기 보다 관리하려는 유혹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빠르면 빠를수록 더 단순하게 된다는 것을 80년대에 알았다.'

90년대 GE의 핵심 전략은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글로벌 경쟁체제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웰치는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 '당신의 사업은 어느 정도 세계화되었나?'

그가 지난해 내놓은 제안을 보자. '세계시장을 확보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지적 자본을 확충하고 더 많은 제품을 해외에서 생산하며 해외에서 더 많은 연구개발과 인력을 확보할 것이다. 우리는 현지인이 승진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현지 주민을 고용해야 합니다. 수년 동안 현지에서 일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인재가 많다. 이제 그들에게 기회를 주자. 그러면 우리는 일석이조를 거둘 것이다. 즉 기업의 글로벌 이미지가 제고되고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는 GE와 세계화의 관계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90년대 모든 사람들이 유럽은 죽었다고 얘기했을 때 유럽기업의 인수합병에 250억달러를 투자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는 '넓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강조했다. 지난해 6개월 동안 일본에 160억달러를 투자했을 때 그는 왜 일본에 투자하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반문한다.

일본은 유럽처럼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노동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풍부한 자금과 똑똑한 국민, 잘 정비된 법 체제가 서로 상승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화와 서비스, 6시그마의 장점을 접목시키면서 내부 관리자들의 핵심역량을 키우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이 책에는 GE의 가치를 키우기 위한 리더들의 필수적인 능력이 몇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고에 대한 열정을 갖고 관료주의를 극복한다.
모든 아이디어를 개방적으로 수용한다.
워크아웃에 전념한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품질향상과 비용절감, 스피드를 추구한다.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벽 없이 행동한다.
분명함과 단순함, 현실성있는 비전을 세워 모든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 공유한다.
다른 사람에게 활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가장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도전하며 성과에 따라 보상한다. 아울러 책임과 의무를 확실히 이해한다.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긴다. 세계화된 생각을 가진다. 그리고 다양한 범세계적 팀을 육성한다.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