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정업체 (주)아메스



그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예를 들면 이랬다. “우리나라 그 많은 기업 중 외국공항 면세점에 들어간 회사가 있는가.

전자회사가 들어갔나, 의류회사가 들어갔나, 아니면 화장품회사가 들어갔나. 저마다 국내에서는 세계적 품질이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해외 면세
점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정말 세계 최고 상품이 아니면 안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들어 갔다. 우리 제품이 세계 일류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고생 끝에 일어선 사람들이어서 말문이 터지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랑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아주 흥미진진하지 않으면 이내 싫증이 나게 된다 .

그런데 그 중 한 마디, “나는 앞으로 10년 간 원자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가 가진 물량을 풀면 우리 업종의 세계 원자재가격이 움직이게 된다
”라는 말이 흥미를 돋구었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 기업인이 특정 원자재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니!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수출이 우리 경제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고
믿고 있는 기자로서는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기자의 기대대로 흥미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자수정 생산 가공 판매업체인 ㈜아메스를 운영하는 김익환(金益桓·54)사장이다. 30년째 자수정에만 매달려와 자수정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인물이다.

어쩌면 곧 세계 최고의 자수정 기업인이 될지도 모른다. 말을 들어보면 자수정에 미친 사람 같다.

“자수정은 지금은 준보석이다. 다이어몬드나 사파이어 루비만큼 값어치가 안 나간다. 자수정이 그런 보석만큼 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
만 찾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자수정 주요 생산국인데다, 품질도 아주 뛰어나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자수정 원석 공급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국제 자수정
가격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계 다이어몬드 시장을 움직이게 된 것도 그런 전략에서였다.

부피가 작은데다, 세공기술에 따라 부가가치가 무한하다는 점에 착안해 다이어몬드를 모은 것이 그들이 오늘 날 다이어몬드 시장을 석권하게 된
바탕이다.

나도 그런 생각에서 자수정 원석을 모아왔다. 우리 공장에서만 앞으로 10년을 쓸 수 있는 물량일 뿐 아니라 세계 자수정 가격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다. ”

그의 이야기를 터무니없다고만 할 일은 아니다. 종업원 100여명에 올 연간 매출목표 250 억 원 수준인 중소기업인의 이야기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
다.

요즘처럼 답답한 세상에 그런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선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자수정 사업가가 될 수 있다는 근거로 지난해 문을 연 중국 베이징(北京) 신공항 면세점에 진출한 이야기를 했다.

“8년 간 공을 들인 끝에 베이징 신공항 면세점에 점포를 낼 수 있었다. 한국 상품으로 해외 공항 면세점에 문을 연 건 내가 처음이다.

솔직히 처음엔 걱정이 안 된 것도 아니었지만 연말 결산을 한 후 나도 깜짝 놀랐다.

구찌, 루이 뷔통, 티파니, 샤넬 등 세계 100여 명품업소가 함께 입점 했지만 아메스가 그들을 누르고 매출 1위를 했다.

아니 아메스가 아니라 한국 자수정이 1등을 한 것이다. 세계의 숱한 명품을 누르고 가장 많이 팔렸으니.”

-자수정이 다른 귀금속보다 값이 싸기 때문 아니냐?

“물론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디자인이 좋았다고 봐달라. 오스트리아에 슈왈롭스키라는 크리스탈 회사가 있다. 세계 웬만한 면세점과 백화점에는
매장이 없는 곳이 없다.

나는 지금 슈왈롭스키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 회사 수준만큼만 가공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회사 디자인 파트에 있던 우리나라
여성 디자이너를 스카웃 했다.

어느 정도는 따라잡았다. 앞으로는 더욱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오게 된다. 지금은 목걸이나 반지 등 장신구만 내놓고 있지만 조만간 자수정 샹들리
에, 자수정과 다른 보석을 박아 넣은 그림(보석화)도 내놓을 것이다.

현재 우리 제품 중 제일 비싼 것은 2만 달러 정도지만 이런 물건이 나오면 한 점에 수십만 달러는 받게 된다. 자수정으로 명실상부한 초고부가가
치 제품을 수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자수정에 미치지는 않았다. 네 살 때 부친을 여읜 그는 어렵게 고등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었다.

신문배달, 물장사, 목공보조 등 험한 일을 하며 겨우 살아가다 친구 아버지의 귀금속상에 들어가게 된 것이 자수정과 인연을 맺은 계기다. “처음
으로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얻었는데 곧 걱정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귀금속이라면 밀수품 아니면 장물인데 만일에 이런 물건을 취급하다 잡혀가면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빽이 좋아 누가 빼내줄 처지도 아니었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 봉양도 걱정거리였다.”

걱정 끝에 귀금속상을 그만두고 자수정 캐기에 나섰다. 꼭 30년 전이다.


당시 본격적으로 한국을 찾기 시작한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 자수정이라는 말을 들은 터여서 판로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라
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자신이 캐 낸 자수정이 세공만 거치면 몇 곱절 비싼 값에 되 팔린다는 사실에 가공과 판매까지 하게 되었다.

보석산업의 부가가치에 눈을 뜬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번 돈은 모두 디자인과 가공기술 개발, 원석 확보에 재투자했다. 큰돈을 굴리지만 지금까
지 부동산이라고는 살고 있는 아파트밖에 없다.

공장도 대부분 아웃소싱 했고 회사도 무역회관 한 층에 세 들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사무실에는 자수정 원석이 들어있는 포대 자루가 사람
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하다.

-이 자수정 원석은 전부 얼마 어치나 되나?

“원석 가격은 의미가 없다. 가공한 후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수백, 수천 배 차이가 나게 된다.” 웬만한 건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따랐다.

국내에만 김포공항 등 18개 면세상가에 점포를 가지고 있으며 내수판매는 전혀 하지 않고 있으니 그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수출기업인이라고 생각
한다.

“작년에 190여 개국 사람이 우리 가게를 찾아와 1,300만 달러 어치의 자수정 제품을 사갔다. 거의가 달러 아니면 엔화 등 외화로 결재했다.

이게 수출 아니고 뭔가?” 그러나 그는 그동안 수출기업인 대접을 받지 못했다. 배나 비행기로 물건을 외국으로 실어 내는 것만 수출이라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수출기업인이면 누릴 수 있는 금융, 행정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은행 돈을 쓸 수 없어 사채만 썼다.

그동안 낸 사채이자만으로도 빌딩 몇 채는 샀을 것이다. 한 달 일 하면 열흘 치 수입은 종업원 임금으로, 그 다음 열흘 치는 사무실 임대료로, 나
머지 열흘 치는 사채이자로 나갔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인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그렇지만 그는 공무원들이 급하면 국내 자수정 면세점을 찾아왔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1970년대 초반에는 나라에 달러가 부족할 때가 많았다.

한국은행에도 달러가 없어 급한 공무로 해외출장을 가야했던 공무원들이 자수정 면세점에서 달러를 바꿔갔다.

당시 언제든 달러를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곤 면세점 자수정판매업소와 ○○각, ○○암 등 일본관광객 상대 요정이 전부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
그의 사업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겨우 지난해에 바뀌었다. 수출기업에 포 함된 데다 ‘수출의 탑’도 받았다.

또 기술신용보증기금은 그의 회사를 ‘유망중소기업’으로 지정했다. 그 동안 한 푼도 쓸 수 없었던 ‘1금융권 돈’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
다.

지난해에는 또 서울지방중소기업청이 그의 회사를 벤처기업으로 지정했다. 그 자신도 신지식인으로 뽑혔다.

다른 건 몰라도 세계 자수정 원석시장을 조종하겠다는 건 분명 모험이다. 그러나 그동안 그가 이뤄온 것으로 봐 이 모험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처음 이 일에 뛰어들었을 때 경부선 야간 완행열차가 내 숙소였다. 자수정 산지인 경남 언양과 울주, 경북 경주를 매일 한 차례씩 다녀왔어야
했으니 열차 안에서 자고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만큼도 못 이뤄냈을 것이다. 요즘은 해외 원석을 사 모으러 브라질 우루과이 등 남미와 탄자니아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의
자수정 산지를 뻔질나게 다니고 있지만….”

<b>보석 산업 고부가가치</b>
<br><b>"국산 자수정 세계최고</b>
<br><b>國石으로 지정 육성을"</b>

그가 자수정에 미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보면 볼수록 색깔의 신비함에경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수정을 취급하다 알게 된 건데 보라색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색깔이라고 한다. 로마교황은 꼭 자수정 반지를 끼고 미사를 집전하는 것도 이
런 이유에서다.

카톨릭 신자들이 교황이나 추기경 손에 입맞춤하는 것도 사실은 그들이 끼고 있는 자수정 반지에 키스를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수정은 한국산이 최고급이다. 특히 색상이 뛰어나 프랑스산 최고급 붉은 포도주 속에 집어넣으면 형태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자수정을 ‘국석(國石)’이라고 불렀다.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나라에서 ‘국석’으로 지정해 제대로 된 산업으로 육
성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가 주요 수출품이라고 하지만 원자재값, 생산장비값, 로열티 등을 내면 과연 얼마나 남을까. 또 물류비는 얼마나 되나. 하지만 자
수정에는 그런 게 없다.

땅에서 캐내 제대로 가공만 하면 그냥 남는 장사다.

타일랜드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도 보석의 이런 장점을 알아 일찍부 터 보석산업을 국책산업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벤처기업
이니, 유망중소기업이니 하고 있으니…. 안 해준 것보다는 좋지만 아직 멀었다."

그는 국가가 더 이상 밀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갈 길을 찾아 나설 계획이다. 베이징에서 성공한 것을 힘으로 올해 중 중국 상하이(上海)공항 면세
점에도 들어간다.

“중국에는 세계 각국에서 연간 2,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중국의 관문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선명한 우리 제품을 그들이 사간다면 국가
홍보에도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상하이 다음에는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월드 기념품 상가에 들어갈 계획이다. “디즈니월드도 세계적 관광지인데 일본의 인조 진주가 잘 팔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산 자수정이 안 팔릴 이유도 없다고 본다. 한국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의 자수정 제품을 생산한다고 하면 더 잘 팔리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