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商道)
"장사를 통해서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상업에 뛰어든 임상옥(林尙沃)은 재물을 흐르는 물처럼 생각했습니다. 재물을 독점하거나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바로 그 재산 때문에 망한다는 게 임상옥의 철학이었습니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경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경제는 다름아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야 돈 많으면 귀족이고 양반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농공상(士農商)' 이라는 말이 사회를 철저히 지배하고 있던 시절(소설 『상도』에서는 약 200년 전이다)부터 바야흐로 21세기인 2001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설 『상도』에서는 독자들이 시계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광대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이 다를 바 없어 책 자체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매우 교훈적이라는 것과 경제는 물론, 종교와 동양철학 등을 절묘하게 넘나들면서도 책을 매우 쉽고 재미나게 썼다는 것이다.

『상도』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실재했던 의주상인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우리 나라에도 존경할만한 경제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그의 사상과 행동을 기본 삼아 오늘날의 신 경제철학을 논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것이다.

임상옥은 한 의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그간의 빚을 갚기 위해 한 상점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상도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훗날 동양을 거머쥐는 거상(巨商)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저런 고생을 거쳐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부를 얻게 되지만 죽기 직전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이라는 유언을 남긴 사람이다.

이 책에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상도'에 관한 명언들이 가득하다. 모두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다', '옳은 일을 위해서는 과감히 이익을 버려라.'

이 말 때문에 임상옥은 중국에서 한 처녀의 생명을 돈으로 구해주고 홀로 조선으로 돌아와 상계에서 쫓겨나게 된다. 천하의 임상옥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책에서 보여주듯이 임상옥은 이 일로 인해 나중에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된다.

의주상인들과 개성상인들의 각기 다른 '상도'에 대한 설명들은 당시 동양의 상거래 현황을 속속들이 대변해준다. 친절, 신용, 의리가 당시 의주상인들에게는 불문율이었으며 개성상인들에게는 '사야 할 물건은 목숨 걸고 사고, 팔아야 할 물건은 목숨 걸고 판다', '사야 할 물건은 손해를 보고서라도 사고, 팔아야 할 물건은 손해를 보고서라도 판다'는 장사의 철칙이 있었다. 이런 다양한 상도들은 책의 굵직한 줄거리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각각의 인물들은 이 상도에 목숨을 걸고 얽히고 설키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 임상옥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사회적으로 한가지에 성공하려면 운도 따라야 하는 듯 싶다. 우선 똑똑한 아비를 만나 어릴 적에 많은 공부를 했다. 당시 상인들이 놓치기 쉬운 글을 깨우쳤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학문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듯 싶다.

게다가 입산하여 절에서 공부하면서 인생의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주인공 임상옥의 인생을 예언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스님 석숭은 임상옥에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가지 단계의 큰 난관을 헤져나가는 코드를 알려준다.

소설은 이 세가지 난관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임상옥에게 일어나고 또 어떻게 극복해 가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기나긴 세월동안 임상옥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그때마다 이 세가지 키를 풀어가면서 임상옥의 상도는 형성된다.

임상옥의 인생의 지도자인 석숭 스님은 임상옥이 하산하여 상도의 길을 걷기 전에 다음과 같은 명제를 세가지 내려준다. 그것은 '죽을 사(死)'와 '솥 정(鼎)'과 '계영배(戒盈盃)'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도통한 스님이 미래를 내다보고 세인에게 내려준 함축어를 어찌 알 수 있으랴. 물론 임상옥도 살아가면서 이 해답을 풀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한다. 아니 소설 속에서는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 여러가지 추측이 이루어진다. 물론 책을 읽어보는 것이 가장 큰 해답이기는 하겠지만, 이 세가지는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즉 선택의 기로에 서서 목숨을 걸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의지의 잣대임은 분명하다.

첫째는 쉽게 말해 때때로 죽음을 각오하고 과감하게 맞서서 자신의 의지를 펼쳐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조선 인삼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시절, 특히 홍삼이 선풍을 일으키던 시절, 의주상인 임상옥은 몇개월이 걸려 가야만 하는 중국 연경에서 인삼을 판매하게 된다.

임상옥은 조선의 인삼 값이 터무니없이 낮다고 생각하여 가격을 올리자, 중국 연경의 모든 상인들은 불매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리하여 임상옥은 인삼 가격을 다시 내리던가 아니면 인삼을 그대로 갖고 다시 의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임상옥은 죽을 사(死)의 가르침에 따라 중대한 결단을 내려 중국 상인들과의 대립 속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둘째는 한지에 적힌 글자 '솥 정(鼎)'에 관련된 비밀이다. 석숭 스님은 임상옥이 하산하여 상도의 길을 걷기 전에 한지에 무엇인가를 쓰고 곱게 접고서는 극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열어보지 못하도록 당부한다.

이런 비밀스런 고집 때문에 이야기는 항상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물론 현명하고 눈치 빠른 임상옥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바로 그 적절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종이를 펼쳐보면서 실마리를 잡아나가게 된다.

이 이야기에는 그 옛날 국사책에서나 봄직한 '홍경래의 난'에 등장하는 홍경래가 연루되어 있다. 정권교체의 꿈을 꾸는 홍경래가 임상옥의 상점에서 일을 하면서 임상옥을 등에 업고 개혁을 단행하려 했던 것이다.

문제는 홍경래가 매우 상징적인 방법으로 임상옥에게 개혁 가담의사를 묻는다는 것이다. '홍경래의 난'에 임상옥이라는 인물이 가담했었다는 얘기가 나오던가?

임상옥은 석숭 스님의 이 '솥 정(鼎)'자를 해독하면서 멋들어지게 권력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깊은 뜻을 해독할 수 있었을까?

임상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석숭 스님의 뜻을 해석해주는 인물로 추사 김정희가 등장한다. 문인 김정희와 상인 임상옥의 조화로움은 바로 문(文)과 상(商)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인간의 욕망에는 명예욕, 지위욕, 재물욕 세가지가 있는데, 어쨌든 임상옥이 당대 제일의 재물 소유자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명예나 지위를 얻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했음직한데, 결국 그 부질없는 욕심에서 벗어남으로써 두번째 고비를 넘기게 된다.

위의 세가지 욕심을 다 부리는 것을 『상도』에서는 하늘에 어긋나는 일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주인공 임상옥이 빠지는 유혹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헤쳐나가게 되는가?

그 장애물은 바로 여자다. 빠지지 않고 있음직한 장애물 중 하나다. 그렇다면 처자를 둔 임상옥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녀의 이름은 '송이'다. 죽은 친구 이희저의 딸인 '송이'라는 여인을 소실로 삼으면서 노비에서 양민으로 신분을 상승시켜준다. 결국에는 혼례까지 치르게 되는데, 나이 차이가 자그마치 20살이나 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또한 깊은 사연이 있는데, 결국 임상옥은 석숭 스님이 마지막으로 준 술잔 '계영배(戒盈盃)'의 비밀을 풀기 시작하면서 덧없는 사랑을 마감하고 송이와 이별하게 된다.

'계영배(戒盈盃)'는 술잔의 이름으로 모든 고통이 욕심, 즉 술과 여자, 쾌락과 명예, 소유와 집착, 애욕과 허무로부터 비롯되며 이것을 초월했을 때 드디어 득도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영물이다.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술잔이지만 재미있게도 이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면 술이 곧 사라진다. 잔 안쪽에는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데 '가득 채우지 말 것이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뭔가를 가득 채우려는 욕망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평생 스승인 석숭은 바로 이 잔이 깨어지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주인공 임상옥은 세가지의 난관을 모두 넘기고서 마침내 인생의 달관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는 경지 말이다. 마지막에 임상옥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내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결코 글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깊은 철학이 담겨 있는 대서사시다.

한낱 소설에 불과한 얘기인데 나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겠지만, 이 모든 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얘기라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연일 신문에 도배되고 있는 정경유착, 부정부패, 매점매석 등의 잘못된 사도(邪道)가 사회에 판치고 있다. 200년 전에 이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의 훌륭한 상업인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상도를 찾는 길인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추사 김정희가 임상옥의 생을 표현하는 구절이 있다. '평생동안 재물을 모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황금을 벌었으나 이는 다만 채소를 가꾼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를 채소 가꾸는 노인이라고 부를만하다. 고로 그를 상불 이라 부르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즐겁고 기쁜 일이다. 부처의 금강경에서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은 공허한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와호장룡'이 떠올랐다.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넘쳐흐르면서 시적인 의미가 넘쳐나는 상징과 은유의 표현들은 동양적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걸작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동양사상까지 맛볼 수 있다.

정의를 따르고 목숨을 버릴 만큼 이(利)를 버리고 의(義)를 찾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될까. 사실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고 찾아볼라 하면 찾기 힘들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바쁜 세상, 눈앞에 닥친 수많은 어려움과 판단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지 말고 이 책을 들어라. 읽는 자 모두에게 삶의 지혜를 안겨주는 영물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