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로대신의 협상에 관한 충고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조짐을 보이던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기업의 라이프 사이클이 극도로 짧아지면서 부도율도 급격히 증가하고, 이에 따라 M&A, 제휴, 협력, 인력이동 또한 현기증이 날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협상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군주(CEO)에게 협상(경영)의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운명이 협상(경영)의 결과와 협상자(경영자)의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협상자들은 다양한 사태와 사건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국익을 잘 관리해야 한다.

또한 협상의 기술은 협상의 의도가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큰 사건의 경우 그 정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작은 사건들의 경우 큰 사건들의 경로에 유용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 외부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크게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작게는 전술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소수의 협상자들을 잘 선발해서 유럽 각국에 파견하면 군주와 국가의 발전에 커다란 일익을 담당하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들의 말 한마디와 조그만 행동은 군대를 동원해 침략하는 것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영리한 협상자는 협상 상대국의 여러 토착 세력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주인에게 막대한 전쟁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우회로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

무력이나 사기로 얻은 성공은 그 토대가 취약한 반면, 양측에 상호 이익을 가져다주는 외교적 성공은 그 토대도 튼튼할 뿐더러 장차 다른 성공들을 확실하게 약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통해 서로간의 희생 속에서 승리한 장군들보다는 993년(성종 12년) 거란(契丹)의 적장 소손녕(蕭遜寧)과 담판을 벌여 물리치고, 994년 청천강 이북의 여진족(女眞族)을 축출해 지금의 평북 일대의 국토를 완전히 회복한 서희(徐熙) 장군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러므로 모든 위대한 군주들은 그런 품성과 명망을 갖춘 협상자들이 군주들 간의 분쟁에서 조정자로 적절히 개입하여 그들의 권위로서 평화를 일궈내야 한다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존경심과 신뢰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은 군주의 평판과 권력, 보편적 위신에 어느 것보다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협상자로서의 자격이 있나?


훌륭한 협상자, 훌륭한 경영자

외교관(경영자)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자신이 성공에 필요한 자질을 천부적으로 지니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러한 자질들이란 복종하는 태도, 쾌락이나 경박한 오락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헌신적인 정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알고 지나치게 고상하거나 복잡한 길로 빠져들어 상대방에게서 거부감을 사는 일 없이 목표를 향해 매진할 줄 아는 건전한 판단력 등을 가리킨다.

나아가 협상자는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조그만 표정 변화로도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아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노련한 협상자라면 그러한 변화를 능히 감지할 수 있다.

또한 협상자는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잘 넘길 수 있을 만큼 편법과 수완도 능해야 한다. 즉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신속하고 현명한 반응을 보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자칫 헛발을 내디뎠을 때에도 슬기로운 반응으로써 자신을 추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제나 주의깊게 들을 수 있는 침착한 자세와 차분한 인내심도 필요하며, 항상 열린 자세와 싹싹하고 정중하고 명랑하고 편안하고 친절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한 인상을 주는 태도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것들이 협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자질이다. 그래서 경영자의 전형을 오히려 슈퍼맨(superman)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반대로 무겁고 냉정한 분위기, 우울하고 거친 태도는 쉽게 지워버릴 수 없는 첫인상을 주게 된다. 훌륭한 협상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할 이야기를 미리 충분히 숙고하기 전에 섣불리 말하지 않을 만큼 자제력을 갖춰야 한다. 대화의 모든 부분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즉각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해서 명성을 얻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외에도 협상자에게 중요한 몇가지 자질을 더 살펴보자.

* 품위
협상자는 자신에게도 인간적인 마음과 감정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외교만큼 고결하고 고상한 정신, 사소한 일에도 친절을 잃지 않는 예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직업도 없기 때문이다.

*논쟁에서의 단호함
훌륭한 협상자는 위기에서 용기를 발휘해야할 뿐만 아니라 논쟁에서도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논쟁에서 필요한 단호함이란, 문제를 용의주도하게 검토한 다음 어떠한 타협에도 굴하지 않고 애초에 마음먹은 것을 실현될 때까지 일관되게 추구하는 자세를 말한다. 타협은 우유부단한 사람이 쉽게 찾는 도피처다.

차선은 최악의 선택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경구가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경영자로서 갖추어야 할 고집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신뢰의 중요성
외교에서는 결코 거짓말의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듯이 여기서도 역시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다. 거짓은 언제나 독약 한 방울을 뒤에 남긴다. 그리고 부정직하게 얻은 성공은 아무리 눈부신 것이라고 해도 기반이 취약하다. 자신이 앞으로 평생동안 외교 분야에 종사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는 협상가라면 정직하고 공정한 일처리로 명성을 쌓아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도록 해야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 것이다.


외교 실무와 지식 경영

그렇다면 이러한 자질을 갖춘 외교관(해외경영자)은 어떤 업무를 해야 할까? 그 업무에서 다국적 기업의 현지 경영자가 해야 할 일, 그리고 지식경영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다.

* 협상자의 이중적 역할
대사의 사명을 갖고 외국에 파견된 대신의 역할은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주인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들의 일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즉, 경영자의 임무는 내부적으로는 경영하는 것이며, 외부적으로는 경쟁에 이기기 위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식 경영을 정보의 수집, 처리, 창출로 볼 때 시작점이 되는 정보의 수집이다.

* 파견받은 외국 궁정에서 처음으로 할 일
협상자는 외국 궁정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임무를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관련 당국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해당국 군주와의 개인적인 접견을 요청해서 즉각 접촉선을 확립하고 자신의 군주와 외국의 군주가 우호적인 관계로 향하는 길을 닦아야 한다.

이러한 단계들을 밟고 나서는 중요한 단계들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는 서둘지 말고 먼저 '지형'을 찬찬히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늘 침착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하며, 궁정과 정부의 관습을 말없이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리를 잡은 다음에 대사는 본국 정부에 그 모든 사정을 담은 첫인상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 정보의 공유
비밀을 가장 적게 가진 외교관이 비밀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발견한다. 그러므로 온갖 종류의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협상자는 건전한 판단력에 따라 그 정보를 활용해야 한다. 어떤 정보든 그 중에서 특별히 중요한 사항은 사실 한두가지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머지 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해도 자신의 주인에게 해를 미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한 정보를 자유롭게 나누면 나눌수록, 그리고 사람들을 칭찬할 때 신중을 기하면 기할수록 다른 사람들은 그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위기의 순간에 그를 도와줄 것이다.

* 남의 말을 잘 듣는 기술
훌륭한 협상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 중의 하나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태도다. 자신에게 제기되는 모든 질문에 대해 교묘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응답하는 방법, 결코 서둘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책을 밝히는 한편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는 태도,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에 협상의 서두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다 밝히지 않도록 조심하는 자세,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 말에 따라 처신을 달리 할 줄 아는 노련함 등이 필요하다.

외교의 커다란 비밀은 사소한 것에서 진정한 것을 찾아내고, 조금씩 상대방의 마음 속에 파고 들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원인과 논거를 추출해내는데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 협상자의 영향력이 부지불식간에 점점 상대방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 보고서 쓰기와 훌륭한 공문의 요건
외교관에게 중요한 일은 외국 궁정을 다루는 기술이지만, 본국의 궁정에 정확하고 믿음직한 보고서를 써서 보내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외교관의 공문은 해당국의 국왕과 고관들, 기타 공적 사건들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마치 초상화처럼 상세하게 묘사해야 한다.

최고의 공문은 명확하고 간결하며, 쓸모없는 수식어나 그 밖에 논지의 명확성을 흐리게 할 표현으로 장식되지 않은 문건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단순함이 첫째 요건이므로 외교관은 자신의 기지를 과시한다거나 학술 논문처럼 학식을 자랑하는 등의 허식을 피하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사실과 사건은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해야 하며, 문서만 보고도 온전하게 연역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또한 사실과 사건은 외국 궁정의 행동을 좌우하는 상황과 동기를 나타내도록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사실을 그대로 기술할 뿐 책임자의 동기나 정책의 견지에서 상세히 분석하지 않는 외교 공문은 알맹이 없는 궁정 연대기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본다면 외교에서 필요한 것, 지식경영에서 필요한 일은 보고, 듣고, 쓰는 일이다. 과연 유치원부터 배우는 기본적인 활동에 우리는 얼마나 프로가 되어 있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협상'을 '경영'으로, '군주'를 'CEO'나 '경영 간부'로, '외교관'이나 '대사'라는 말을 오늘날의 '국제적 경영자' 혹은 '글로벌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한다면, 현대적 경영기법이라는 것도 실은 옛 지혜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