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견훤.왕건에게 배우는 경영교훈

드라마 왕건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천년왕국 신라가 쇠퇴하면서 후백제 후고구려(마진, 후에 태봉으로 개칭)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던 시기이다.

이 시대의 불세출의 영웅들 이야기가 바로 '태조 왕건'이다. 창업에는 성공했지만 수성에 실패한 궁예와 견훤 그리고 2인자 이지만 최후의 승자가 된 왕건의 이야기이다.

이들 세영웅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경영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궁예의 교훈 / 기회는 안놓친다

궁예의 통치는 신권정치적 요소를 가미한 개인적 카리스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시 지방 할거세력의 하나였던 양길 휘하의 장수로 특별한 세력기반을 갖지 못했던 궁예가 단기간에 삼한 땅의 3분의 2를 장악하는 폭발적 성장세를 실현할 수 있었던 데는 궁예의 타고난 카리스마와 과감하고 공격적인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

궁예에서 배울점은 우선 그의 공격적 리더십이다.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창출됐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서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궁예는 기회가 포착되자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키워 준 장인어른(양길)을 가차없이 제거해 버렸다.

그러나 한 사람에의 권력집중은 독재와 부패와 권력남용을 낳는다. 궁예가 수성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권력을 나누어 쓸 줄 몰랐다는데 있다. 오히려 신하들을 의심해 관심법을 동원 세척 철방망이로 죽이기를 일삼았다.

기업경영에서도 리더십의 분산(Distributed Leadership)은 매우 중요하다. 초기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더라도 기업을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두루 기용하고 이들에게 권한을 주는 분산된 리더십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잭 웰치를 독재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잭 웰치의 가장 큰 장점은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비전과 목표를 공유한 사장단이 알아서 의사결정한다.

궁예는 지도자가 제시하는 성과기준의 한계에 대해서도 중대한 교훈을 준다. 궁예의 소위 '대동방국' 목표는 설정부터 잘못된 것이다. 삼한도 평정하지 못한 태봉이 대륙정벌을 꿈꾼다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었다. 특히 비록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견훤의 충주와 금성공세를 막아내느라 지칠대로 지친 장군들에게 대동방국 꿈은 도전의식을 고취하기 보다는 심리적 좌절만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기업경영에서도 목표는 현재보다 항상 높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도전적인 목표 (Stretching Goal)가 바로 그것이다. 캐논이라는 회사가 '제록스 타파'를 목표로 제시하고 복사기 사업에 뛰어 든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스트레칭 골은 파괴적인 목표 즉 디스트로잉 골 (Destroying Goal)과는 다르다. 현재의 자원과 핵심역량으로 어렵지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와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목표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궁예의 '대동방국 건설'은 디스트로잉 골이었다. 최고경영자가 제시하는 목표도 스트레칭 골이어야지 디스트로잉 골이어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1등 하지 못하는 기업이 '세계경영'을 외친다면 그 것은 디스트로잉 골이지 스트레칭 골이 아니다. 궁예가 무리한 야심으로 국가재정과 민생의 부실을 초래했듯이 기업경영에서 디스트로잉 골의 설정은 기업의 부실과 조직원들의 심리적 이반만을 재촉할 뿐이다.

궁예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교훈은 민심의 이반에 초기에 적극 대처하라는 점이다. 궁예는 무리한 북벌계획으로 백성들은 물론 지방 호족세력들의 지지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예는 정책을 수정하기 보다는 반대하는 관료와 호족세력을 관심법을 써서 제거하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외면, 몰락을 재촉했다.

고객의 마음을 떠났다고 판단했을 때 기업이 할 일은 '가능한 최단시간 내에 성난 고객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다.

미국 소형 가전 및 캠핑장비회사 선빔社의 최고경영자 제리 W. 레빈은 취임하자 마자 바로 그 다음날 선빔과의 거래 파기를 선언한 소매업자들을 불러 모아 "전임자가 단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 소매업자들에게 과도한 재고부담을 지운 것은 잘못된 일" 이라며 즉각 시정을 선언, 이들과의 거래관계를 복원시켜 놓았다.

■견훤의 교훈 / 신뢰로 국가경영

견훤은 후3국시대 영웅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무인(武人)이다. 출중한 무예와 힘을 바탕으로 한 강인하고 남성적인 인간미로 부하들을 휘어 잡은 가부장적 군주였다. 신라의 하급 군관으로 출발해 호남지역의 해적들을 소탕하며 스스로 왕국을 일군 견훤의 주변에는 군인의 의리로 뭉친 가신그룹들이 포진해 있다.

드라마에서 궁예는 종간을 제외하면 시작부터 가신이라고 할 주변인물이 없었던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견훤에게는 신라군관시절부터 그와 동고동락한 가신들이 일군을 이루고 있었다.

기업경영에서도 가신그룹은 중요할 수 있다. 2월 27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고경영자의 생존법'이란 기사에서 "경영진을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는 일" 을 생존전략의 하나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1998년 부실기업 선빔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수락한 제리 레빈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속에서 카폰으로 옛 동지들을 규합했다. 현재 32명의 선빔 최고경영진 중 29명이 레빈이 불러 모은 레빈맨들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일수록 경영진간의 신뢰가 중요한 데 그럼 어디서 사람을 끌어다 쓸 수 있겠느냐." 가신그룹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신뢰에 있다. 경제학자 윌리엄 오우치는 "부족적인 조직이 관료조직 보다 신뢰도가 높다"고 말했다. 오우치가 말 하는 부족조직(Tribe)은 바로 가신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견훤은 또한 실천적 리더십의 전형이다. 그는 항상 전투에 앞장 섰다. 궁예는 휘하의 장수들을 전쟁터로 몰고 자신은 황궁을 지키지만, 견훤은 대부분의 전투를 그가 자랑하는 철기군과 함께 치뤄냈다.

견훤이 금성(나주)을 궁예군에게 빼앗기고 충주공략작전과 금성탈환작전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기반을 잃지 않은 것은 바로 황제자신이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을 군사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천적 리더십이 기업경영에서 성공한 예는 얼마든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정주영 회장은 중동 건설 현장을 누비며 거대 그룹을 일구었을 뿐 아니라 70줄에 접어들어서도 현대건설 신입사원 연수에 참석해 신입사원들과 씨름을 즐기고 막걸리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러나 견훤의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대권승계 프로그램'에 있었다. 견훤은 첫째 부인한테 얻은 장남 신검을 무시하고 둘째 부인에게 얻은 세째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내세웠다가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는 비극을 겪는다. 가신들도 신검과 금강파로 나뉘어 아귀다툼을 벌였다.

기업 경영에서도 후계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미국에서 최고경영 자의 중요한 평가항목 중 하나는 훌륭한 후계자들을 얼마나 잘 길러 내는 가이다. 제록스의 최고경영자 리차드 도만과 AT&T의 마이클 암스트롱이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쫓겨 난 것은 바로 기업의 떠오르는 스타들을 다른 회사에 빼앗겼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삼성과 SK, LG 등이 질서있는 2세 승계로 그룹의 기반을 탄탄히 유지시키고 있다.

■왕건의 교훈 / 연합통한 勢확장

왕건은 세 영웅 가운데 카리스마가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다. 패서(개성)지역의 뿌리깊은 호족출신으로 신분상으로는 가장 유리했지만 궁예의 밑에서 두 각을 나타낸 여러 장수 가운데 하나였을 뿐 민중을 열광시키거나 호족들을 압도하는 역량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왕건의 최대 강점은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감싸 안는 포용력이다. 자신의 세력과 카리스마가 약했기 때문에 호족들을 회유하고 혈연관계로 묶어 두는 정책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이같은 정책은 결과적으로 신라 붕괴이후 계속되는 혼란으로 지쳐있던 민심을 수습하는데 효과를 발휘했다.

왕건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위대한 2인자들'의 리더십이다. 워렌 베니스와 데이빗 히넌이 집필한 이 책은 1인자보다 어쩌면 더 위대했던 2인자들을 그리고 있다. 이책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는다면 공산혁명에는 성공했으나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역사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았던 모택동과 모택동의 2인자 주은래가 궁예와 왕건의 경우와 유사하지 않을까. 2인자는 1인자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며 절대로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모든 공은 1인자에게 돌리지만 세상은 2인자가 다 했다는 사실을 안다. 2인자는 스스로 권한을 행사할 일이 있어도 절대로 이를 남용하지 않는다.

군인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알프레드 마샬 장군이 좋은 예이다.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말에 군인으로서 최고의 공적이 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지휘권도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넘겨 줄 정도였다. 한 때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던 모 전자회사 전문경영인 회장이 '자신의 직분'을 잊은 채 오너 회장처럼 행세하다 경영일선에서 퇴진당한 예는 2인자 노릇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왕건은 지방호족 세력들과 혼인을 통한 혈맹관계를 구축했다. 덕분에 부인을 29명이나 거느리게 됐다. 기업경영에서도 마찬가지로 세가 불리하면 연합해야 한다. 메모리 D램 분야에서 NEC와 히타치가 연합 엘피다社를 만들어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1위 삼성전자 타도에 나선 것이 좋은 예이다.

또 세계 4위 철강기업인 프랑스의 유지노가 룩셈부르크의 아베드, 스페인의 아세랄리아와 합병을 추진하는 것도 세계 1-2위인 포철과 신일본제철을 타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밖에도 자동차, 인터넷 비지니스, 미디어 등 산업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대기업간 연합의 예는 무수히 많다.

왕건의 또 하나의 강점은 실패를 만회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는 점이다. 궁예 축출후 지방세력의 이탈로 입지가 약화된 왕건은 견훤과의 전투에서 연전연패를 당하지만 그 때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세력을 재건했다.

기업 경영에서도 실패는 병가지상사이다. 오히려 실패를 장려하는 조직 문화가 없으면 혁신이 이뤄질 수 없다. 문제는 실패에 대비 탈출전략(Exit Strategy)을 준비해 놓는 일이다.
세계적인 음료회사인 코카콜라는 1985년 코카콜라의 제조방식을 바꾸려 했다. 마케팅회사들도 코카콜라 신제품(New Coke)에 긍정적인 조사결과를 내 놓았다. 성공할 줄 만 알았던 이 결정은 그러나 대실패로 드러났다. 전통적인 코카콜라는 미국의 유산 중 하나였던 것이다. 영국항공 (British Airways)도 비행기 꼬리에 새겨진 영국 국기를 지웠다가 위기를 맞은 일이 있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탈출이 명쾌했다. 신제품을 폐기했으며 영국국기를 되살려 놓았다. 두 회사가 실패한 혁신에 매달렸다면 지금쯤 코카콜라라는 회사와 영국 항공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왕건에서도 '그놈의 남동풍'(?) 때문에 전투에서 패배한 견훤이 두번 세번 금성을 공략하다 더 큰 손실을 보게 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한보 등 국내에서 해체된 대부분의 그룹은 실패한 투자후의 탈출에 실패한 예이다. 성공적인 탈출의 좋은 예는 삼성그룹의 자동차 투자이다. 삼성그룹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패한 투자치고는 상당히 매끄럽게 피해를 최소화했다.

왕건의 단점은 그러나 근친혼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초기에는 왕가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이었겠으나 고려왕조가 사실 무신정권이후 거의 200년 이상을 말이 국가지 국가의 실체가 무색할 정도로 형편없는 나라가 된 것도 근친혼으로 인한 '왕가혈통의 경쟁력 약화'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업은 끊임없이 새 피를 수혈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식품회사 사장을 컴퓨터 회사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는 IBM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물의 등용을 통해 기업의 시야를 넓히고 내부적 긴장을 고조시켜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배양할 수 있다.

근친혼이 유전적 결함을 누적시키듯이 외부수혈을 배척하는 조직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다. 조직의 우수한 점 뿐 아니라 조직의 결함까지도 그대로 아래로 이어져 내려가기 때문이다.